코카콜라 신화를 창조한 인물들

코카콜라를 만든 사람들

Intro

모든 브랜드에는 시작이 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돋움한 설탕물, 코카콜라는 과연 누가 만들고 누가 발전시켰을까?

소화제로 시작하다

1886년 미국의 약사인 존 펨버튼은 코카나무의 잎과 콜라나무 열매의 추출물을 이용해 소화제를 만들었다. 그는 용액에 탄산을 섞어 보았고 음료를 마셔본 고객들은 의외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신이 개발한 용액의 음료로서의 가능성을 본 펨버튼은 5센트에 코카콜라를 팔기 시작했다. 펨버튼의 회계 담당자였던 프랭크 로빈슨은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코카-콜라’라는 이름을 음료에 붙여주고 자신만의 필체로 로고까지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대중을 만나기 시작한 코카콜라는 하루에 10잔 정도가 팔리는 음료였고 펨버튼은 자신의 창작품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존 펨버튼

전설적인 콜라병의 등장

애틀랜타의 사업가였던 그릭 캔들러는 1887년 펨버튼의 코카콜라를 2,300달러에 인수한다. 이후 본격적으로 공장을 세운 캔들러는 1894년 처음으로 코카콜라를 유리에 담아 팔기 시작했다. 코카콜라가 세상에 나온지 8년 만이었다. 이후 계속해서 유리병에 담겨 팔리던 코카콜라는 유사품으로 골머리를 앓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치러진 1915년 디자인 공모전에서 전설적인 병 패키지를 만나게 된다. Root glass company라는 회사의 디자인팀이 우승하여 생산되기 시작된 코카콜라 병은 카카오 열매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팀원들이 카카오를 코카콜라의 원료 중 하나로 착각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코카콜라 병은 지금까지도 코카콜라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역대 콜라병

코카콜라 명성의 초석을 다지다

그릭 캔들러는 코카콜라를 통해 큰 수익을 얻었음은 물론 후에 애틀랜타의 시장까지 역임했지만 그의 야망은 거기까지였다. 캔들러는 그가 처음 코카콜라에 투자한 돈의 1만 배에 이르는 2500만 달러에 회사를 어니스트 우드러프에게 팔았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었던 로버트 우드러프는 지금의 코카콜라의 명성을 다진 인물이다. 아들 우드러프는 아버지에게 오랫동안 골칫거리였다. 학교를 싫어했고 번번이 아버지의 기대치를 밑돌았다. 그는 유리공장에서 60센트를 받고 모래를 퍼담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코카콜라가 아버지 우드러프 아래에서 경영위기를 겪기 시작했을 때 아들 우드러프는 특유의 기질과 잠재력으로 화이트 모터스라는 회사의 부사장직에까지 올라있었다. 아버지 우드러프의 SOS에 아들 우드러프는 연봉을 반으로 깎으면서도 흔쾌히 응답했고 코카콜라의 CEO가 되자마자 판매담당자들을 모두 해고한 후 24시간 만에 서비스 부서로 전원 복귀시키며 삽시간에 회사를 장악했다. 그는 세상 모든 곳에서 코카콜라가 팔리기를 원했고 2차 세계대전은 그에게 기회였다. 우드러프는 단돈 5센트(1886년 처음 코카콜라가 팔리던 값이다!)에 콜라를 전쟁터에 공급했고 병사들은 맥주 대신 콜라를 마시기 시작했다. 이후 전쟁을 계기로 아이젠하워와도 두터운 친분을 쌓은 우드러프는 애국심 마케팅을 적극 이용하며 코카콜라를 미국을 상징하는 음료로 격상시켰다. 수십명의 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누군가 전쟁중 필요한 것을 묻자 아이젠하워가 ‘코카콜라 한 잔만 갖다 주겠소?’ 라고 말한 일화는 이미 코카콜라의 명성이 어느 지점까지 다다랐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이후 사업의 비결을 물어보는 기자들에게 ‘내 혈관 속에 흐르는 것은 피가 아니라 코카콜라 입니다’ 라고 말한 우드러프의 열정은 지금의 코카콜라를 만든 최고의 비결이었다.

로버트 우드러프

최고의 브랜드를 완성하다

가장 미국적인 회사인 코카콜라의 주가총액을 40억 달러에서 1,450억 달러까지 끌어올린 입지전적 인물, 코카콜라를 최고의 브랜드로 완성시킨 인물로 쿠바 난민 출신인 로베르토 고이주에타 전 회장을 언급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20년간 한 우물을 파며 코카콜라를 최고의 브랜드로 완성한 고이주에타는 공격적인 동시에 효율성을 강조한 경영방식과 매우 정력적이고 성실한 태도로 아메리칸 드림의 정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New Coke의 실패에서 코카콜라의 방향성을 확신한 고이주에타는 1980년대부터 오직 콜라 한 분야에서 최고의 제품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전력질주했다. 그가 코카콜라에 입사한 이후 경쟁사인 펩시의 콜라를 단 한 방울도 먹지 않았다는 일화나, 코카콜라 주식을 단 한주도 팔아본 적이 없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80년대 초 코카콜라의 미국 음료시장 점유율은 35%였고 코카콜라의 직원들은 성숙한 콜라 시장에서 더 이상의 성장은 힘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이주에타는 코카콜라의 미국인들의 위 점유율(Share of stomach)이 얼마인지를 물으며 코카콜라의 시장을 마실 수 있는 모든 것, 즉 물까지 확대했다. 그들의 적수는 펩시콜라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던 직원들에게 고이주에타가 선사한 사고의 전환은 신선한 충격 그 이상이었다. 97년 고이주에타가 암으로 사망했다는 비보는 코카콜라가 받아든 가장 슬픈 소식 중 하나였음에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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